미륵정토사 &
초무한참나선원







등대법문

=.갑진(2024)년 신년법어

존등의 감사와 사랑을 나눕니다.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떤 새해를 맞이하고 싶으십니까?

일체 존재 비존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방우주를 창조한 원인과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우연일까요?

누구나 온전한 깨달음의 경계에 이르면 자신이 초무한 시방우주를 현현한 시방주 일불 일주임을 공히 깨닫게 됩니다.

중도, 만법개공, 연기법, 사성제, 선각, 물아일체유심조, 무심, 지혜자비, 팔정도, 행복, 신앙 등 그 어떤 법이 진리이고 정수일까요?

불교 내에선 일체의 번뇌가 꺼진 열반이 목적이란 진리의 설파도 있습니다.
모든 깨달음도 행복도 그 외 일체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인연 따라 일어난 환상이요 꿈이고 매트릭스에 불과하니 해탈과 무심이 으뜸이요 일체개고를 영원히 여읜 열반이 으뜸이요 궁극의 경계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으뜸이요 저것이 으뜸이고 궁극의 경계는 이것이다 하는 근본적 이유가 있습니다.

작게는 이고득락과 화평과 안락이고 크게는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이 그것입니다.

혹자 중에는 저의 이런 설파에 대해 기본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이는 맞는 이야기라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그 둘 모두에 대해 무관 무의미 무심하는 것이 그것이라 하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이와 같은 각양의 다른 경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자신의 여정에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의 체험을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유무위 행인 것입니다.
무행도 그중의 한 행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귀공명을 이루고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혹은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차적 행복 여정은 건강과 오감입니다.
이차적 행복 여정은 의식주 안정입니다.
삼차적 행복 여정은 부귀공명입니다.
사차적 행복 여정은 신앙입니다.
오차적 행복 여정은 중행 즉 팔정도입니다.
육차적 행복 여정은 조건 없이 그 어떤 것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깨달음입니다.
칠차적 행복 여정은 무위귀감 행복입니다
팔차적 행복 여정은 자신이 곧 팔정도 자재 일체구족의 절대무결 천상천하유아독존 시방주 일불 일주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건 천당에 있건 극락에 있건 비천하건 고귀하건 질병 중이건 건강하건 행복할 수 있는 깨달음! 즉 조건이 충족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자유롭게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일 수 있는 깨달음 그것이 진정한 본연의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금 즉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하지 않다면 허명이며 무명 중생의 윤회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됨을 자명히 보았습니다.
일체는 제행무상이라 열반도 무상하여 깨지고 신통자재도 자재지옥이 되는 춘하추동 사시 경우의 수가 반드시 있게 됩니다.

이를 직면해 붇다이고 천주라 할지라도 조건 없이 행복하지 않다면 반드시 스스로 윤회를 선택하여 자증의 여정에 오르는 것을 자명하게 보았습니다.

비천하면 비천한대로
부귀하면 부귀한대로
무지하면 무지한대로
깨달았으면 깨달은 대로 그럴 수 있음이 일체 존재 비존재의 목적지입니다.
만약 있는 그대로 안되는 경우의 수에 대한 방직수도 자재해 그럴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수단의 진화를 통한 새로운 버전의 작품창작과 자아구현의 공연 환희입니다. 모두 있는 그대로 아니면 인연법의 방직으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한 가운데 수단이 되는 개인적 인류적 문화적 작품의 진화를 누리고 나누는 프로인생의 새해 맞을 수 있기를 은축해 마지않습니다.
이를 미락행 일불보살도 장엄행이라 저는 이름합니다.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하지 않은 행은 업장이 됩니다.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행은 붓다의 방광행 즉 장엄행이 됩니다.
만법 중에 어떤 법이 최상의 법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법은 일체가 나의 몸이고 마음인 내가 시방주 일불 일주로서 현현한 구족의 모든 것입니다.
어떤 법이건 상황에 적정한 법륜을 굴리는 것이 활불의 중행팔정도입니다.
지금 조건 없이 미락행하지 아니한 상태라면 지옥행의 업을 스스로 짓고 있는 무명 중생의 여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인연에 따라 무심 무상 만법개공 열반 혹은 특정의 신앙이 도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휴공의 과정상 효과를 침소봉대 맹신하여 일법신앙주의에 매몰되는 여정에서 중행팔정도 자유자재의 경계에 자유롭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당장 시방주로서 조건없이 자재하게 행복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습니까?
가족들이 행복하지 않습니까?
사회가? 나라가? 인류가? 행복하지 않습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스스로 그 본연 경계의 자신 시방주임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환생을 선택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지금 즉시 있는 이대로 모든 것에서 행복하실 수 있고 그것을 자신과 가족과 이웃 세계 그리고 시방과 더불어 장엄하고 나눌 수 있는 눈이 열리고 행과 문화 문명의 구현과 진화를 낳는 미락행 일불보살도 시방주 일불 일주 되는 새해 맞이하시길 다시 한번 더 축원축복해 마지않습니다.

지금 즉시 그와 같이 될 수 있는 이상적인 MY WAY의 길은 참자기 자신에 대한 신의귀감이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
-太安 電覺 合掌-


등대법문

=.갑진(2024)년 신년법어

존등의 감사와 사랑을 나눕니다.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떤 새해를 맞이하고 싶으십니까?

일체 존재 비존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방우주를 창조한 원인과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우연일까요?

누구나 온전한 깨달음의 경계에 이르면 자신이 초무한 시방우주를 현현한 시방주 일불 일주임을 공히 깨닫게 됩니다.

중도, 만법개공, 연기법, 사성제, 선각, 물아일체유심조, 무심, 지혜자비, 팔정도, 행복, 신앙 등 그 어떤 법이 진리이고 정수일까요?

불교 내에선 일체의 번뇌가 꺼진 열반이 목적이란 진리의 설파도 있습니다.
모든 깨달음도 행복도 그 외 일체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인연 따라 일어난 환상이요 꿈이고 매트릭스에 불과하니 해탈과 무심이 으뜸이요 일체개고를 영원히 여읜 열반이 으뜸이요 궁극의 경계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으뜸이요 저것이 으뜸이고 궁극의 경계는 이것이다 하는 근본적 이유가 있습니다.

작게는 이고득락과 화평과 안락이고 크게는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이 그것입니다.

혹자 중에는 저의 이런 설파에 대해 기본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이는 맞는 이야기라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그 둘 모두에 대해 무관 무의미 무심하는 것이 그것이라 하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이와 같은 각양의 다른 경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자신의 여정에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의 체험을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유무위 행인 것입니다.
무행도 그중의 한 행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귀공명을 이루고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혹은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차적 행복 여정은 건강과 오감입니다.
이차적 행복 여정은 의식주 안정입니다.
삼차적 행복 여정은 부귀공명입니다.
사차적 행복 여정은 신앙입니다.
오차적 행복 여정은 중행 즉 팔정도입니다.
육차적 행복 여정은 조건 없이 그 어떤 것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깨달음입니다.
칠차적 행복 여정은 무위귀감 행복입니다
팔차적 행복 여정은 자신이 곧 팔정도 자재 일체구족의 절대무결 천상천하유아독존 시방주 일불 일주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건 천당에 있건 극락에 있건 비천하건 고귀하건 질병 중이건 건강하건 행복할 수 있는 깨달음! 즉 조건이 충족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자유롭게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일 수 있는 깨달음 그것이 진정한 본연의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금 즉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하지 않다면 허명이며 무명 중생의 윤회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됨을 자명히 보았습니다.
일체는 제행무상이라 열반도 무상하여 깨지고 신통자재도 자재지옥이 되는 춘하추동 사시 경우의 수가 반드시 있게 됩니다.

이를 직면해 붇다이고 천주라 할지라도 조건 없이 행복하지 않다면 반드시 스스로 윤회를 선택하여 자증의 여정에 오르는 것을 자명하게 보았습니다.

비천하면 비천한대로
부귀하면 부귀한대로
무지하면 무지한대로
깨달았으면 깨달은 대로 그럴 수 있음이 일체 존재 비존재의 목적지입니다.
만약 있는 그대로 안되는 경우의 수에 대한 방직수도 자재해 그럴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수단의 진화를 통한 새로운 버전의 작품창작과 자아구현의 공연 환희입니다. 모두 있는 그대로 아니면 인연법의 방직으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한 가운데 수단이 되는 개인적 인류적 문화적 작품의 진화를 누리고 나누는 프로인생의 새해 맞을 수 있기를 은축해 마지않습니다.
이를 미락행 일불보살도 장엄행이라 저는 이름합니다.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하지 않은 행은 업장이 됩니다.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행은 붓다의 방광행 즉 장엄행이 됩니다.
만법 중에 어떤 법이 최상의 법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법은 일체가 나의 몸이고 마음인 내가 시방주 일불 일주로서 현현한 구족의 모든 것입니다.
어떤 법이건 상황에 적정한 법륜을 굴리는 것이 활불의 중행팔정도입니다.
지금 조건 없이 미락행하지 아니한 상태라면 지옥행의 업을 스스로 짓고 있는 무명 중생의 여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인연에 따라 무심 무상 만법개공 열반 혹은 특정의 신앙이 도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휴공의 과정상 효과를 침소봉대 맹신하여 일법신앙주의에 매몰되는 여정에서 중행팔정도 자유자재의 경계에 자유롭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당장 시방주로서 조건없이 자재하게 행복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습니까?
가족들이 행복하지 않습니까?
사회가? 나라가? 인류가? 행복하지 않습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스스로 그 본연 경계의 자신 시방주임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환생을 선택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지금 즉시 있는 이대로 모든 것에서 행복하실 수 있고 그것을 자신과 가족과 이웃 세계 그리고 시방과 더불어 장엄하고 나눌 수 있는 눈이 열리고 행과 문화 문명의 구현과 진화를 낳는 미락행 일불보살도 시방주 일불 일주 되는 새해 맞이하시길 다시 한번 더 축원축복해 마지않습니다.

지금 즉시 그와 같이 될 수 있는 이상적인 MY WAY의 길은 참자기 자신에 대한 신의귀감이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
-太安 電覺 合掌-


등대법문

=.갑진(2024)년 신년법어

존등의 감사와 사랑을 나눕니다.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떤 새해를 맞이하고 싶으십니까?

일체 존재 비존재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방우주를 창조한 원인과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우연일까요?

누구나 온전한 깨달음의 경계에 이르면 자신이 초무한 시방우주를 현현한 시방주 일불 일주임을 공히 깨닫게 됩니다.

중도, 만법개공, 연기법, 사성제, 선각, 물아일체유심조, 무심, 지혜자비, 팔정도, 행복, 신앙 등 그 어떤 법이 진리이고 정수일까요?

불교 내에선 일체의 번뇌가 꺼진 열반이 목적이란 진리의 설파도 있습니다.
모든 깨달음도 행복도 그 외 일체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인연 따라 일어난 환상이요 꿈이고 매트릭스에 불과하니 해탈과 무심이 으뜸이요 일체개고를 영원히 여읜 열반이 으뜸이요 궁극의 경계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으뜸이요 저것이 으뜸이고 궁극의 경계는 이것이다 하는 근본적 이유가 있습니다.

작게는 이고득락과 화평과 안락이고 크게는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이 그것입니다.

혹자 중에는 저의 이런 설파에 대해 기본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이는 맞는 이야기라 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그 둘 모두에 대해 무관 무의미 무심하는 것이 그것이라 하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이와 같은 각양의 다른 경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자신의 여정에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의 체험을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유무위 행인 것입니다.
무행도 그중의 한 행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귀공명을 이루고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혹은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차적 행복 여정은 건강과 오감입니다.
이차적 행복 여정은 의식주 안정입니다.
삼차적 행복 여정은 부귀공명입니다.
사차적 행복 여정은 신앙입니다.
오차적 행복 여정은 중행 즉 팔정도입니다.
육차적 행복 여정은 조건 없이 그 어떤 것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깨달음입니다.
칠차적 행복 여정은 무위귀감 행복입니다
팔차적 행복 여정은 자신이 곧 팔정도 자재 일체구족의 절대무결 천상천하유아독존 시방주 일불 일주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건 천당에 있건 극락에 있건 비천하건 고귀하건 질병 중이건 건강하건 행복할 수 있는 깨달음! 즉 조건이 충족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자유롭게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일 수 있는 깨달음 그것이 진정한 본연의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금 즉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하지 않다면 허명이며 무명 중생의 윤회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됨을 자명히 보았습니다.
일체는 제행무상이라 열반도 무상하여 깨지고 신통자재도 자재지옥이 되는 춘하추동 사시 경우의 수가 반드시 있게 됩니다.

이를 직면해 붇다이고 천주라 할지라도 조건 없이 행복하지 않다면 반드시 스스로 윤회를 선택하여 자증의 여정에 오르는 것을 자명하게 보았습니다.

비천하면 비천한대로
부귀하면 부귀한대로
무지하면 무지한대로
깨달았으면 깨달은 대로 그럴 수 있음이 일체 존재 비존재의 목적지입니다.
만약 있는 그대로 안되는 경우의 수에 대한 방직수도 자재해 그럴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수단의 진화를 통한 새로운 버전의 작품창작과 자아구현의 공연 환희입니다. 모두 있는 그대로 아니면 인연법의 방직으로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복한 가운데 수단이 되는 개인적 인류적 문화적 작품의 진화를 누리고 나누는 프로인생의 새해 맞을 수 있기를 은축해 마지않습니다.
이를 미락행 일불보살도 장엄행이라 저는 이름합니다.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하지 않은 행은 업장이 됩니다.
아름답고 즐거우며 행복한 행은 붓다의 방광행 즉 장엄행이 됩니다.
만법 중에 어떤 법이 최상의 법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법은 일체가 나의 몸이고 마음인 내가 시방주 일불 일주로서 현현한 구족의 모든 것입니다.
어떤 법이건 상황에 적정한 법륜을 굴리는 것이 활불의 중행팔정도입니다.
지금 조건 없이 미락행하지 아니한 상태라면 지옥행의 업을 스스로 짓고 있는 무명 중생의 여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인연에 따라 무심 무상 만법개공 열반 혹은 특정의 신앙이 도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휴공의 과정상 효과를 침소봉대 맹신하여 일법신앙주의에 매몰되는 여정에서 중행팔정도 자유자재의 경계에 자유롭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당장 시방주로서 조건없이 자재하게 행복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습니까?
가족들이 행복하지 않습니까?
사회가? 나라가? 인류가? 행복하지 않습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스스로 그 본연 경계의 자신 시방주임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환생을 선택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지금 즉시 있는 이대로 모든 것에서 행복하실 수 있고 그것을 자신과 가족과 이웃 세계 그리고 시방과 더불어 장엄하고 나눌 수 있는 눈이 열리고 행과 문화 문명의 구현과 진화를 낳는 미락행 일불보살도 시방주 일불 일주 되는 새해 맞이하시길 다시 한번 더 축원축복해 마지않습니다.

지금 즉시 그와 같이 될 수 있는 이상적인 MY WAY의 길은 참자기 자신에 대한 신의귀감이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
-太安 電覺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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